장례가 거의 마무리 되었으니 이제 글을 써보자. (기억을 지배하는)기록은 남겨야 하겠기에.
무슨 얘기부터 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냥 생각나는 순서대로.
kivol
무슨 얘기부터 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냥 생각나는 순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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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 소식을 들었던 날에, 늦잠을 잤었다. 우연히도 엄뉘도 늦잠을 자서 느지막이 깨서 밥을 하시느라 어떤 미디어에도 접촉을 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컴퓨터를 켜고 네이버에 들어 가서 소식을 보고-그 시각은 자살로 거의 굳어진 시각이었다-내가 잠이 덜깼다는 생각을 했고, 5초 후에 '헉 시발 올게 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엄뉘한테 '노 전대통령 돌아가셨대.. 자살인 것 같대'라고 말을 했고, '노태우?' '아니 노무현'이라는 대화를 하고도 엄뉘는 약 2초간 정보의 프로세싱을 하고 계셨다.
케네디의 암살, 9.11, 뭐 그런 충격적인 사건을 접할 때, 미국인들은 그 때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많이 기억한다고 한다. 굳이 나도 이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다.
2.
사실 어제까지만 해도 별로 와닿지 않았다. 일상은 그대로 바뀐 것이 없었고, 오히려 냉정하게 앞으로 정국의 향방, 현 정부 정책의 변화, 이런 현실적인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현실감이 전혀 없었던 것에 가까운 것 같다. 상황 자체가 너무 드라마틱해서였을 것이다.
3.
고인에 대한 기억이 뭐가 있었을까. 뭐 개인적인 것으로야 내가 악수를 해 본 유일한 대통령이었고, 그 때 한 지인이 대통령장학생에 대한 병역특례를 요청했었고, 고인은 그 자리에서 바로 난색을 표현했다.-MB라면 왠지 그 자리에서 화끈하게 수락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사실 든다- 난색을 표하면서 이런 저런 근거를 댔는데 사실 잘 생각은 안나고, 내가 이해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말하자면 약간 설득당했었다는 기억만 난다. 말은 굉장히 잘하는 사람이었다.
4.
어제 퇴근하고 강남역 분향소 앞에 갔었다가, 추산해보건데 1000명 정도 되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길래 그냥 포기하고, 왠지 그 곳에 가면 하나 있을 것 같아서 무작정 집근처 연세대로 향했다. 다행히도 연대생들이 만들어 놓았던 분향소가 있어 묵념을 하는데, 그 때 3에 썼던 기억이 생각이 났다.
5.
고인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 인권변호사였다. 그러고 보면 중1때의 꿈은 인권변호사였구나. 인권변호사가 꿈이 된 것은 그냥 변호사가 좀 더 구체화 된 것이었고, 변호사가 꿈이 된 이유는 법조인은 법조인인데 판사보다 돈을 더 많이 벌기 때문이었다. 판사가 꿈이 된 계기는 어릴적 전-노 비자금 사건을 보고서였는데, '대통령도 감옥에 보내는 판사'라는 이미지가 어린 마음에 크게 박혔나 보다. 생각해 보면 이거 원 어릴적부터 권력에의 끊임없는 추구를 했었던 것 같기도 한데, 뭐 물론 지금도 그런 기본 어트리뷰트는 바뀌지 않은 것 같다.
6.
고인의 죽음 관련해서 내가 하는 생각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다. 마지막 노림수였는지, 절망속의 선택이었는지 잘 판단이 서지 않고, 사실 굳이 따지고 싶지도 않다.
고인이 받은 자금은 약간의 형식적 약점이 있으나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임기말인데다 대가성을 찾기 힘들고, 박회장이 친구에게 한방 쏜 성격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60억이면 그게 공정택 스케일이지 대통령 스케일은 아니잖는가.
7.
고인의 정책은 동의한 것도 있었고 동의하지 않은 것도 있었고 판단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경제정책과 북한정책은 동의했고, 교육정책쪽은 동의하지 않은 부분이 있으며, 사학법과 로스쿨을 교환한 것은 최악이었다. 이라크 파병과 FTA, 샘물교회건은 판단하지 못하겠다. 나한테 지금 결정하라고 하면 안하겠지만, 그 자리에서 모든 정보를 가진 상태에서 결정하라고 하면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정책을 밀어붙이는 방법에서의 아쉬움은 계속 말했듯 남아 있다. 차라리 지금 시스템에서는 마키아벨리스트적인 DJ의 방법이 옳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8.
시스템 하니까 떠오르는데, 며칠 전부터 내각제를 지지하게 된 것 같다. 그냥 짧은 생각.
9.
만약 마재윤이 2007년 3월 2일에 불의의 사고로 더 이상 마우스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면? 그는 스타판 역사상 유일무이한 the one으로 남았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케이스가 역사에 몇 명 있었다. 카이사르, 그리고 박정희.
이번 국상의 역사적인 의미를 많이 고민해 봤었다. 처음에는 그라쿠스 형제가 생각났는데, 강남역에 서 있던 400m 가까운 줄(게다가 4명이 한줄에 서 있었다)을 보고 좀 생각이 바뀌었고, 결국 굽시니스트의 만화와 소름끼치도록 비슷한 결론을 내렸었다. 고인은 자신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박정희로 대변되는 우파적 가치의 대척점에 상징으로 서게 될지도 모르겠다.
10.
인간으로서의 고인은 참 존경스러운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고인은 간단한 C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알았고, 리눅스를 다룰 줄 알았다고 한다. 프로그래밍같은 쓸모 없는 분야에서도 이 정도의 지식욕이 있었던 것을 보면 고인이 다른 분야에서도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을지 상상도 안된다.
11.
http://www.youtube.com/v/j7fsRncuTUk&color1=0xb1b1b1&colo ...
(2:37~)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번도 바꿔보지 못했고,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은
전부 죽임을 당했다.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다. 패가망신했다.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 지고 있어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척하고 고개숙이고 외면했어야 했다.
눈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제 어머니가 제게 남겨주었던 제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보면서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넘치는 우리의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 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나는 이 연설문이 한국사에 남을 명연설이라고 생각한다.
12.
Assholes rule the world. 부조리와 비합리, 정의롭지 못한 사람이 이기는 사회.
나, 그리고 내 주위의 많은 사람은 아마 그 부조리와 비정의가 되어 충분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 것이 가장 무섭다. 마치 서울시 교육감 선거때처럼, 가만히 있으면 이익이 굴러들어오겠지만 떳떳하지 못한 느낌.
떳떳하지 못하면, 그리고 정의롭지 못하면 부끄러워 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냥 그뿐이다.
처음 소식을 들었던 날에, 늦잠을 잤었다. 우연히도 엄뉘도 늦잠을 자서 느지막이 깨서 밥을 하시느라 어떤 미디어에도 접촉을 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컴퓨터를 켜고 네이버에 들어 가서 소식을 보고-그 시각은 자살로 거의 굳어진 시각이었다-내가 잠이 덜깼다는 생각을 했고, 5초 후에 '헉 시발 올게 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엄뉘한테 '노 전대통령 돌아가셨대.. 자살인 것 같대'라고 말을 했고, '노태우?' '아니 노무현'이라는 대화를 하고도 엄뉘는 약 2초간 정보의 프로세싱을 하고 계셨다.
케네디의 암살, 9.11, 뭐 그런 충격적인 사건을 접할 때, 미국인들은 그 때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많이 기억한다고 한다. 굳이 나도 이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다.
2.
사실 어제까지만 해도 별로 와닿지 않았다. 일상은 그대로 바뀐 것이 없었고, 오히려 냉정하게 앞으로 정국의 향방, 현 정부 정책의 변화, 이런 현실적인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현실감이 전혀 없었던 것에 가까운 것 같다. 상황 자체가 너무 드라마틱해서였을 것이다.
3.
고인에 대한 기억이 뭐가 있었을까. 뭐 개인적인 것으로야 내가 악수를 해 본 유일한 대통령이었고, 그 때 한 지인이 대통령장학생에 대한 병역특례를 요청했었고, 고인은 그 자리에서 바로 난색을 표현했다.-MB라면 왠지 그 자리에서 화끈하게 수락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사실 든다- 난색을 표하면서 이런 저런 근거를 댔는데 사실 잘 생각은 안나고, 내가 이해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말하자면 약간 설득당했었다는 기억만 난다. 말은 굉장히 잘하는 사람이었다.
4.
어제 퇴근하고 강남역 분향소 앞에 갔었다가, 추산해보건데 1000명 정도 되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길래 그냥 포기하고, 왠지 그 곳에 가면 하나 있을 것 같아서 무작정 집근처 연세대로 향했다. 다행히도 연대생들이 만들어 놓았던 분향소가 있어 묵념을 하는데, 그 때 3에 썼던 기억이 생각이 났다.
5.
고인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 인권변호사였다. 그러고 보면 중1때의 꿈은 인권변호사였구나. 인권변호사가 꿈이 된 것은 그냥 변호사가 좀 더 구체화 된 것이었고, 변호사가 꿈이 된 이유는 법조인은 법조인인데 판사보다 돈을 더 많이 벌기 때문이었다. 판사가 꿈이 된 계기는 어릴적 전-노 비자금 사건을 보고서였는데, '대통령도 감옥에 보내는 판사'라는 이미지가 어린 마음에 크게 박혔나 보다. 생각해 보면 이거 원 어릴적부터 권력에의 끊임없는 추구를 했었던 것 같기도 한데, 뭐 물론 지금도 그런 기본 어트리뷰트는 바뀌지 않은 것 같다.
6.
고인의 죽음 관련해서 내가 하는 생각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다. 마지막 노림수였는지, 절망속의 선택이었는지 잘 판단이 서지 않고, 사실 굳이 따지고 싶지도 않다.
고인이 받은 자금은 약간의 형식적 약점이 있으나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임기말인데다 대가성을 찾기 힘들고, 박회장이 친구에게 한방 쏜 성격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60억이면 그게 공정택 스케일이지 대통령 스케일은 아니잖는가.
7.
고인의 정책은 동의한 것도 있었고 동의하지 않은 것도 있었고 판단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경제정책과 북한정책은 동의했고, 교육정책쪽은 동의하지 않은 부분이 있으며, 사학법과 로스쿨을 교환한 것은 최악이었다. 이라크 파병과 FTA, 샘물교회건은 판단하지 못하겠다. 나한테 지금 결정하라고 하면 안하겠지만, 그 자리에서 모든 정보를 가진 상태에서 결정하라고 하면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정책을 밀어붙이는 방법에서의 아쉬움은 계속 말했듯 남아 있다. 차라리 지금 시스템에서는 마키아벨리스트적인 DJ의 방법이 옳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8.
시스템 하니까 떠오르는데, 며칠 전부터 내각제를 지지하게 된 것 같다. 그냥 짧은 생각.
9.
만약 마재윤이 2007년 3월 2일에 불의의 사고로 더 이상 마우스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면? 그는 스타판 역사상 유일무이한 the one으로 남았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케이스가 역사에 몇 명 있었다. 카이사르, 그리고 박정희.
이번 국상의 역사적인 의미를 많이 고민해 봤었다. 처음에는 그라쿠스 형제가 생각났는데, 강남역에 서 있던 400m 가까운 줄(게다가 4명이 한줄에 서 있었다)을 보고 좀 생각이 바뀌었고, 결국 굽시니스트의 만화와 소름끼치도록 비슷한 결론을 내렸었다. 고인은 자신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박정희로 대변되는 우파적 가치의 대척점에 상징으로 서게 될지도 모르겠다.
10.
인간으로서의 고인은 참 존경스러운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고인은 간단한 C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알았고, 리눅스를 다룰 줄 알았다고 한다. 프로그래밍같은 쓸모 없는 분야에서도 이 정도의 지식욕이 있었던 것을 보면 고인이 다른 분야에서도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을지 상상도 안된다.
11.
http://www.youtube.com/v/j7fsRncuTUk&color1=0xb1b1b1&colo ...
(2:37~)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번도 바꿔보지 못했고,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은
전부 죽임을 당했다.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다. 패가망신했다.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 지고 있어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척하고 고개숙이고 외면했어야 했다.
눈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제 어머니가 제게 남겨주었던 제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보면서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넘치는 우리의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 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나는 이 연설문이 한국사에 남을 명연설이라고 생각한다.
12.
Assholes rule the world. 부조리와 비합리, 정의롭지 못한 사람이 이기는 사회.
나, 그리고 내 주위의 많은 사람은 아마 그 부조리와 비정의가 되어 충분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 것이 가장 무섭다. 마치 서울시 교육감 선거때처럼, 가만히 있으면 이익이 굴러들어오겠지만 떳떳하지 못한 느낌.
떳떳하지 못하면, 그리고 정의롭지 못하면 부끄러워 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냥 그뿐이다.
2009/05/30 01:52
2009/05/30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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