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 숙제가 하나 나왔는데
대충 여자친구 꿈 이야기를 각색하고 살을 붙여서 살짝 소설처럼 써봄.
제출한 버전에서는 문단 번호는 안붙임. 웹에서는 붙이는게 더 잘읽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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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국어 글쓰기 과제 - 묘사하는 글쓰기
무한공간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
조승연
1.
나는 정신을 차렸다. 아니, 정신을 차렸다는 표현은 전혀 말이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 곳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꿈속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순간에는 그 것이 꿈속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단지 내가 있던 그 공간은 사방이 뚫려있는, 무한히 펼쳐진 백지장과도 같은 새하얀 공간이었다. 이곳은 어떠한 천재 과학자의 머릿속 상상에 존재하는 공간일까? 만약에 그렇다면, 그 과학자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나와 이 공간은 모두 붕괴되게 될까? 이러한 상상을 잠시 했으나, 모두 부질없는 일이었다. 내가 있던 그 공간은 그 때만큼은 지금까지의 어떤 경험보다도 더 실재적인 것이었다.
2.
과연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이 공간에 서 있는 것은 내가 저지른 죄에 대한 형벌일까? 그러고 보니, 예전부터 지옥에 대해 나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상상을 하고 있었다. 만일 지옥이 존재한다면, 그 것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 것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지옥은 불구덩이와 같은 형상이 아닌,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3.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나는 한 줄로 서 있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 중의 한 명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줄에 서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남자였다. 마치 같은 판형으로 하나하나 찍어낸 듯, 모두 같은 머리모양을 하고 있었고 같은 키를 가지고 있었으며,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평범한 머리, 그리고 평범한 옷. 문득 ‘개성이 실종된 사회가 바로 지옥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과연 그곳이야말로 지옥일는지도 모른다.
4.
그러고 보니 나의 손에는 공이 하나 들려 있었다. 이것을 공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으니 정정하자면, 내 양 손은 구형의 물체를 하나 붙들고 있었다. 공의 크기는 볼링공과 비슷한 크기였다. 그리고 마치 거울과 같이 은빛을 띄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공은 볼링공보다 훨씬 무거웠다. ‘과연 이 공의 재질은 무엇일까?’하는 공학도 로서의 본능적인 궁금증은 잠시 뒤로 밀어 놓은 채,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5.
이 공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공의 무게가 나의 현실세계에서의 업보를 나타내는 것은 아닐는지.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나의 업보는 손에 들 수조차 없을 만큼 무거운 것은 아니었으리라. 신에게 대항한 죄로 언덕 위로 영원히 바위를 굴려 올려야 했다던 시지프스의 바위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여기에 줄서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 특히 많은 업보를 쌓은 누군가는 시지프스의 바위를 굴리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만 이제는 시지프스의 바위가 아니라 시지프스의 쇠공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6.
언제나 꿈속에서는 모든 것이 갑자기 진행이 된다. 그 공은 아무래도 나의 업보와는 상관이 없었나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들고 있던 공을 앞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2미터정도 떨어진 거리에 앞 사람이 서 있었고, 나는 그에게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나는 발바닥을 뗄 수가 없었다. 그것은 흡사 발바닥이 마치 자석처럼 바닥에 붙은 것과도 같았다. 결국 나는 앞 사람에게 공을 전달하기 위해 앞 사람을 소리 내어 부를 수밖에 없었다.
7.
“저기요. 이봐요? 잠깐 뒤 좀 돌아보세요.”
나는 앞 사람을 열심히 불렀으나, 그 사람은 묵묵부답이었다. 분명히 앞 사람의 몸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는 마치 귀먹은 사람처럼 나의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더욱 답답한 것은 그 사람이 뒤를 돌아보려는 듯 하면서도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올 듯 나올 듯 나오지 않는 재채기처럼, 나는 극심한 답답함을 느꼈다.
8.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어렴풋이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무한히 펼쳐진 백지장같이 흰 색으로 깔려 있던 바닥은 어느 새 검게 변했고, 이윽고 각각의 사람들의 발밑에 거대한 디지털시계의 무늬가 나타났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한폭탄의 시간제한이 줄어들듯이, 20초 후면 무엇인가 큰 변화가 있을 예정이었다. 나는 지레 무서워져서 내가 들고 있던 쇠공을 앞 사람에게 던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무거운 쇠공이 날아가 앞 사람의 뒤통수에 맞으면 크게 다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은 없었고, 나는 쇠공을 힘껏 앞 사람에게 던졌다.
9.
공을 던지고 난 직후였다. 순간적으로 나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서늘한 바람이 나의 머릿속을 통과하는 느낌. 나는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이윽고 나는 깨달았다. 내 얼굴의 30cm 앞에 쇠공이 날아왔고, 공은 잠시 후 관성의 법칙에 의해 나의 얼굴을 강타할 것이라는 것을.
e.
그와 동시에 나는 알 수 있었다. 한 줄로 서 있던 모든 사람은 나 자신이었고, 이 공간은 무한히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앞과 뒤가 연결되어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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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isty 2009/11/09 22:59
'공학도 로서의 본능적인 궁금증은' -> 이부분이 특히 마음에 듭니다.
우진 2009/11/10 18:52
3번까지는 301동 설명하는 줄 알았음.
승연 2009/11/10 21:05
이 블로그 방문자라면 'periodic한 boundary condition으로 결정된 vector field군'이라는 리플 정도는 달아야 :$
kh 2009/11/11 08:11
댓글들좀봐 ㄷㄷ